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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의 창업이야기

나는 어떻게 3D프린터 사업을 어떻게 시작했는가

by 상승남 2021.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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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디자인을 전공했었다. 창업에 관심이 많았던 사실 창업이전에 나의 제품을 만들어 꼭 사람들에게 팔고 싶었던 꿈이 있었다. 그런일을 하는것이 사실 창업이었고 사업을 하는것이 었기에 자연스럽게 창업이라는것을 하게 되었다. 원래는 나는 학창시절 개인용 치아의료기기라는 창업아이템을 가지고 전국 창업경진대회와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시제품제작 지원사업 등 국가에서 지원하는 창업지원 사업이라고는 다참가 하려고 하였다. 그이유는 내가 개발한 개인용치아관리기를 팀원들과 함께 꼭 개발을 완성하여 양산해 팔고싶은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전국 창업경진대회에서도 1등을 하고 창업선도대학 지원금을 받아 약 2800만원의 사업비를 지원 받았다. 그외에 왠만한 창업경진대회에서는 전부 1등으로 수상하였다. 나에겐 정말 기적같은 일이면서도 대학생시절에 꿈에다가간다는 생각에 정말 행복했었다. 그러나 그행복도 잠시였다. 의료기기를 개발하면서 알면 알아갈수록 만들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가기 시작하였다 지식을 늘어났지만 결국엔 자본의 한계에 부딪쳤다. 고정수입이 없는 학생신분으론 아무리 경진대회 중소기업에서 사업비를 지원을 받아도 감당할수 없는 규모의 자본이 필요하였다. 설상가상 시제품 제작 을 외주로 주었으나 형편없는 결과물을 들고와 사실상 나의 첫 창업아이템의 질주는 여기서 끝나 버렸다. 그때는 정말 드디어 노력의 결실을 마주 한것 같았는데 큰기대만큼 실망감이 너무 커서 학교를 제대로 가지를 못했었다. 지각을 한번도 안했던 나는 실패의 패배감에 학교를 가고싶지 않은 무력함에 빠져 8번이나 지각하여 한과목에 F를 받기 가까운 수준까지와버렸었다. 점점 심해져 말도 더듬기 시작하고 학생들 누군가 창업동아리 관련해서 창업을 한다는 창자만 꺼내도 도망가고 싶었다. 실패자인 나에게 조언을 구할까봐 너무 두려웠웠다. 증상은 한달쯤 넘게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안정적여 졌다. 마음의 회복이 됬다기보단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몸이 안정을 대찾으려고 한것 같았다.

이제는 창업이라는것을 하지않고 그냥 취업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어드덧 2학기 중순이 다가오고 학교후배들이 졸업작품을 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편입을 하여서 졸업작품을 끝냈지만 학점이 남아 더다니는 상황이었다.

후배 학생중 어떤 출력소에 3d프린터를 맡겼다는 샘플을 들고왔었다. 나는 3d프린터는 자체연구용으로 창업선도대학 지원사업비를 받았을 시 그중 장비 구매비용 항목으로 큐비콘 싱글플러스 라는 3d프린터를 고심하여 구매하였었다 위장비는 국내중 가장 신경쓰게 만든 3d프린터중 하나이고 출력물과 오토레벨링 기능까지 있어 사용자 편의성이 그당시에 탁월하였기에 구매하고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후배가 가져온 출력물을 보니 돈을.비싸게 주고 맡긴 출력물 치곤 엉망으로 만들어 주었다. 출력물에는 거미줄 투성에다가 작은 부품은 또 출력을 해주지 않는다고 원하는 부품까지 출력을 받지 못하고 출력품을 받고 만것이었다. 그당시 나는 업체가 이렇게 형편없게 만들고 돈을 받을 수 있나 싶었다. 왜냐하면 보유한 싱글플러스 프린터 출력물 결과물 대비 너무 형편없었고 그작은 출력물 하나 겁내서 뽑지 못하였던 업체가 한심하게까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후배에게 하나 제안하였다. 그 못뽑은 작은부품 선배가 공짜로 출력해줄게라고 해주었다. 졸업작품은 한번밖에 안하지만 졸업이 걸려있기에 매우 소중한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의 작품이 잘완성되길 바라는 마음에 작은출력물이야 그냥 뽑아주자 싶었다. 3D파일을 받고 내가 믿고 있던 3d프린터 싱글플러스에게 출력을 돌렸다. 위이야기는 2017년 경 이야기이며 그때 사용한 장비는 아직도 내사무실 옆자리 곁에 함께 있어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출력은 성공대로 잘나왔다. 작은부품을 전달해주면 기뻐해줄 후배들의 모습이 눈에들어왔었다. 무사히 전달해주고 돈을드려야되는거 아니냐는 말에 나는괜찮다고 하였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니 고맙게도 작은 커피선물 기프티콘을 받았다. 그일이
일어난후로 이거 내가하면 업체보다 더잘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회사는 비용을 어떻게 측정하는지 몰라 다른외주 사이트를 둘러보았다. 크몽에서 살펴보니 시간당 약 5000원에 출력물을 받고있었다. 나도 그정도 가격에 받으면 평균적인것 같아 적당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이후로 크몽(https://kmong.com/gig/79465)에서 3d프린터 출력 서비스도 올려서 아직까지도 상담을 받고 수익을 창출하고있다 :)

이제 대략적인 시장단가를 알고 나서 다른 후배에게 찾아갔었다. 당시에는 졸업작품 시즌이기에 후배들은 어떤업체에 자신의 작품을 맡길지 곤란한 상황이었다.
혹시나 해서 나는 물어보았다. 졸업작품 혹시 나에게 맡겨보지 않을래?. 나는 속으로 무섭기도 했었다. 업체도아니고 일개 대학생이 졸업작품을 잘만들 수 있을가에 대한 의심은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도 여러작품을 만들어준 경험이.아직없는데 돈을 줄정도로 나에게 믿음을 줄까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후배는 흔쾌히 졸업작품제작을 나에게 맡겨도 괜찮다고 하였다. 다행이 나는 후배들에게 오래 라이노부터 기타 디자인까지 함께지내면서 곁에서 계속 가르쳐오면서 지냈다 그러한 믿음이 있었을까 어쩌면 돈을 줘야되는 거래관계에서 믿음을 가지고 흔쾌이 나에게 맡겨서 다행이라는 말에 너무 고마웠다. 오히려 멀이 있는 업체보다 선배가 가까이 있느니 더믿음이 간다는 말에 나는 정말 다행스러운 안도와 너무 감사함을 느꼈다.
내가 할일은 이제 최선을 다해 그 후배의 작품을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결과론적으론 성공적이었다. 나의 집과 대학교는 걸어서 불과 10~15분거리이며 실시간으로 촬영을 하여 제작 진행사항과 동영상까지 찍어 보내줄 수 있는 요건이 되었다. 이행동은 아직까지 사업을 하면서 고객들에게도 해주는 행동이다 내가 외주를 맡길때 업체들은 중간과정을 아무런 보고도 해주지 않았다 큰돈을 주고 맡기는데 잘되가는지 완성은되어가는지 오히려 불안만 크게 하였었다. 내가 겪은 심리를 다른사람도 겪을꺼라 생각하고 제작중간과정도 말이없어도 최선을 다해 보내주었다.

그렇게 하니 자신의 작품이 출력되는것을 볼수있는것에 신기해하고 진행상황을 알수있으니 안심하였다. 그덕분에 크몽및 네비어 스토어 출력물 리뷰에 친절함에 대한 칭찬이 많다 이것은 다른업체와 다르게 나많이 가질 필살기 같은 거였다.

한명이 성공적으로 완성을 하니 후배들이 우루루 연락오기 시작하였다. 잘얘기하지 않았던 후배도 출력물을 보고 잘만들어 주는것을 알기에 입소문이 돌아 의뢰를 하기 시작하였다. 당시에 나는 반전원이 맡길줄은 몰랐기에
휴식을 위해 3박4일정도 짧은 일본여행을 하고 있었다.
밀려오는 주문에 호텔에서 밤은 3D프린터 목업제작 상담과 라이노 3d모델링이 잘만들어졌는지 후배들 파일 하나하나 검토해주고 수정이필요한부분 이야기를 해주고 일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왔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출력의뢰는 계속되었다. 장비도 그때는 1대만 있어서 오래걸리는 출력물들은 벅차기도 했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하나하나 출력을 다해주었고 그렇게 후배들의 졸업작품은 무사히 다만들게 되었다.

졸업작품이 열리고 전시장을 가니 후배들의 여기다 선배가 만드신거네요. 이름올려릴까요? 하는 농담에 둘러 쌓이며 3d프린터 출력이라는 사업의 첫매출과 동시에 처음의 시작 형태였다.

그후론 나는 본격적으로 3d프린터 출력사업이 매출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는 크몽과 네이버블로그 스마트스토어(smartstore.naver.com/idh/products/3904722703)에까지 글을 올려 모교뿐만아니라 전국적으로 의뢰를 받아 시제품제작을 도와주고 있다. 그간 많은 의뢰자와 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함께 기뻐하며 시제품을 같이 즐겁게 만들었다.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 좋은 시제품제작을 할것이다.

다음편에는 2번째 졸업작품 제작을 도와주는것을 시작으로 더욱 어떻게 지금까지 지냈는지 더 깊게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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